《디오게네스와 아리스토텔레스: 자유와 예속의 원류》, 박홍규 지음, 필맥.


배부른 아리스토텔레스… 거지를 자처한 디오게네스


알렉산드로스가 디오게네스 앞에 서서 “나는 대왕인 알렉산드로스다”라고 하자, 디오게네스는 “나는 개(犬)인 디오게네스다”라고 말했다. 알렉산드로스가 왜 개로 불리느냐고 묻자 “무엇인가 주는 사람들에게는 꼬리를 흔들고, 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짖어대고, 나쁜 자들은 물어뜯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가 “무엇이건 원하는 것을 말해보라”고 하자, 디오게네스는 “햇볕이나 가리지 말고 비켜라”고 대답했다. 


어릴 적 텔레비전, 만화 같은 데서 얼핏 본 듯한 장면이다. 현재, 디오게네스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그의 저서는 한 권도 존재치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소박하고 자족적인 생활, 권력이나 돈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추구한 참된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특히, 화폐 폐지를 주장했는데, 아마도 자연과 함께 하며 자족적인 생활을 추구하는 아나키즘적 이상사회와 깊이 연결돼 있는 듯하다.


교보문고 사이트에서 ‘디오게네스’를 입력해보니 그의 철학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설명한 책은 오직 한 권뿐이었다. 아나키스트 박홍규가 쓴 《디오게네스와 아리스토텔레스: 자유와 예속의 원류》였다. 물론 《디오게네스는 왜 행복할까?》라는 책도 있었는데 어린이를 위한 그림 동화책이다. 박홍규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중에서 가장 유명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반대편에 바로 ‘디오게네스’로 대표되는 자유, 자족, 무욕의 철학이 있다고 분석한다. 디오게네스의 철학을 부처와 예수의 가르침과도 깊이 연결시킨다.


즉, 노예출신 디오게네스야말로 자율주의(자유주의, libertarianism),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의 선구자라는 것이다. 누구로부터의 억압을 거부하고 개인의 독립성을 강조한 자율주의, 한 국가의 시민이 아니라 전체 세계의 시민이라는 세계시민주의는 당시 그리스인들의 인종적 우월의식, 제국주의 등을 타파하고자 하는 태도이다. 이러한 태도는 예수의 철학, 초창기 기독교의 메시지와도 부합된다. 디오게네스의 철학은 자타의 차별을 없애고 사람을 널리 서로 사랑(겸애)하라고 전파한 묵자(墨子)의 사상과도 비슷해 보인다. 


박홍규의 말대로 홈리스, 거지, 개와 같았던 디오게네스에 비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철학을 잇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핵심은 무엇일까? 대학에서 철학과 수업뿐만 아니라 정치학과 전공수업에 제일 먼저 등장하는 정치사상가들이 이들이다. 박홍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야말로 현재의 신보수주의, 네오콘(Neo-conservative)의 사상적 기반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글로벌리즘, 또는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그들의 사상은 시장질서, 자유로운 자본이동, 다양성과 상충되는 문화통합을 강조한다. 미국 신보수주의의 형성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 레오 스트라우스(Leo Strauss)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의 그늘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의론 “돈이 곧 정의”


이른바 인민재판을 받고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 철인정치를 부르짖은 플라톤, 정복자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을 자처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민주주의자가 아니라 엘리트정치, 귀족정치, 소수의 지배를 강조한 꼴통들이다. 조선시대 사대부 정치를 줄기차게 강조한 성리학자들과 묘하게 매칭된다. 박홍규는 심지어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분배·교환적 정의)은 돈이 최고, ‘돈이 곧 정의’라는 결말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이들의 사상은 초인을 외친 니체, 나치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칼 슈미트와 하이데거, 그리고 네오콘을 거쳐 한국의 꼴통들에게도 주입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을 계승하고 있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미덕’을 강조하고 있다. 박홍규는 미덕 중심의 공동체주의는 개인의 자유, 자율적 민주주의와는 전혀 다른 차원라고 지적한다. 샌델의 저서가 불티나게 팔린 데에는 이명박의 공로가 지대하다. MB가 국정지표로 공정사회를 내걸며 샌델의 저서를 결부시켰기 때문이다. 기존의 수많은 철학자들이 주장했던 정의론과 별반 다른 게 없는 《정의란 무엇인가》의 돌풍현상은 정의에 굶주리고 공동체 파괴에 허탈감을 느낀 한국인들의 허기를 자극했기 때문이 아닐까.


박홍규는 자유와 평등, 무욕과 평화에 기반을 두고 있는 디오게네스 철학은 비록 가난하지만 자유롭고 자연과 함께 하는 자치사회를 지향했다고 결론 맺는다. ‘가난한 유토피아’가 사실은 진짜 풍요로운 유토피아일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부자가 되는 사회가 있다면, 어딘가에는 이를 위해 희생한 빈곤과 굴종의 사회가 존재한다는 반증이다. 부(富)와 힘(권력), 그것이 곧 선이고 평화이며, 전문가·엘리트들이 정치사회(공동체)를 지배하는 사회가 좋은 국가라는 것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참모습이다. 


권력가, 자본가들이 흔히 주장하는 이론 중 하나가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이다. 이는 민주주의, 복지사회와는 전혀 관계없는 허상이며, 부자들의 아전인수, 조삼모사의 간계일지도 모른다. 플라톤의 철인정치, 이데아 사상과 비교되는 철학자로서, 민주주의자이며 고대 원자론을 완성했던 데모크리토스의 말은 엘리트주의자, 국가주의자, 인종우월주의자, 심지어 부자가 정치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권력지향형 자본가들에게 보내는 강력한 반박처럼 들린다.


“시민정(민주정) 하에서의 가난이 엘리트정이나 군주정에 보통 수반된다고 하는 번영보다 낫다. 그것은 자유가 노예보다 좋은 것과 같은 이치다. 현자는 모든 국가에 속한다. 왜냐하면 위대한 영혼의 집은 전 세계이기 때문이다.” (본문 133페이지)


※책 정보

Posted by 아나키안

《머레이 북친의 사회적 생태론과 코뮌주의》, 머레이 북친 지음/서유석 옮김, 메이데이, 2012.


사회적 생태론 창시자? 


마르크스주의자를 거쳐 오랫동안 자타공인의 아나키스트로 활동했던 ‘머레이 북친’(Murray Bookchin, 1921~2006)은 어느날 ‘아나키즘(anarchism)’을 접고 대안철학으로서 ‘사회적 생태론’(Social ecology)과 이를 응용한 공동체 비전 ‘코뮌주의’(Communalism)를 제창한다. 《머레이 북친의 사회적 생태론과 코뮌주의》는 비록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과 실천론을 나름대로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창시했다는 ‘사회생태론’은 환경친화적 공동체주의를 지향하는 ‘에코 아나키즘’과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또한, 반국가주의, 반자본주의적 색채가 강한 마을·도시공동체(‘민회’가 이끄는 자치체)의 연대, ‘코뮌주의’, ‘연방제’는 오래전에 크로포트킨이 정립한 아나르코 코뮤니즘을 다른 방식으로 재배치한 것에 불과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현대 아나키즘이 라이프 스타일(생활양식) 아나키즘, 반사회적인 개인주의적 아나키즘 등으로 전락했다고 비난하면서도 정작 그가 제시하고 있는 비전들은 그간 수많은 아나키스트 사상가들이 제시한 이론들과 마르크스주의(Marxism)를 얼기설기 접붙이는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아나키즘이 마르크스주의처럼 소수에 의해 정립된 사상이 아니기에, 그 명칭이 어찌됐든 일차적으로 아나키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사회 생태주의나 코뮌주의 따위에 ‘창시자’라는 반아나키즘적 작위를 부여하는 게 몹시 거북하고 교조적으로 다가온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마냥 이상한 코뮌의 머레이 북친… 그의 꿈과 모험은 조금은 기묘하다.


‘갑과 을의 구도’만큼 새로울 것 없는 위계구조론


그는 급진적 환경운동가 출신답게 자본주의 위기의 본질을 ‘생태위기’에서 찾고 있다. 또, 생태위기는 근본적으로 자연에 대한 지배와 더불어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 즉 계급을 포함한 ‘위계구조’에서 출발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 내에서 진행되는 일반적인 생태운동과 그의 사회생태론이 다른 점은 생태위기의 해법을 지배구조의 해체를 통해서 모색하고 있는 데에 있다. 


그런데 부르주아,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을 넘어, 산업자본주의 이전부터 존재한 광범위한 위계구조(지배와 피지배)에 대한 비판과 사회변혁, 자치와 자유, 생태주의를 줄기차게 강조해 온 당사자는 아나키즘이었다.  


아테네 민회의 현대적 복원?


그는 “녹색운동과 자본주의는 공존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심지어 “자본주의는 생태계의 암”이라고 극언한다. 그러면서 국가, 사회, 정치의 개념을 설명하며 자유로운 시민들이 공동체(폴리스)를 관리했던 아테네 민회 및 아고라 정치의 현대적 복원을 주장하고 있다. “사회전체를 경제에 예속시키고, 생활세계, 사회운동마저 상품관계, 시장관계에 예속시켜버리는 자본주의”에 대한 대항마로서 고대 도시국가와 같은 자립적 지역자치와 이들의 네트워크 ‘연방제’를 주창한다. 그의 정치 개념은 ‘사회적 제(諸)가치의 권위적 배분이 정치’라고 정의한 데이비드 이스턴(David Easton)의 권위적(!) 관점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요컨대, 그는 지역자치와 코뮌주의에 대한 주요 쟁점들을 설명하며, 풀뿌리 시민권 개념이 자리 잡은 ‘지자체 중심의 경제 시스템’이 중앙집권적 국가와 집중화된 거대기업 권력에 맞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가의 복제품으로 전락한 지역자치제도의 변혁을 통해, 즉 정치구조와 과정의 혁신을 통해 자본주의의 식민화를 타파할 수 있다는 그의 논리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있다. 경제가 정치를 잠식하고, 대기업이 국가의 영역마저 침범하는 상황에서 과연 정치(자치)가 거대 경제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코뮌의 정체는?


그가 말하는 코뮌 또는 연방 시스템은 국민국가, 민족국가가 해체된 수준을 의미하는 것인지 다수의 지자체들과 수평적으로 공존하는 단계를 뜻하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또한 신자유주의 유령이 전세계를 뿌리 깊이, ‘영혼마저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자치라는 정치학적 개념으로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을 극복할 수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배워왔다는 그의 자치경제론에는 하부구조(경제, 생산양식 등)가 상부구조(정치, 문화, 철학 등)에 영향을 미친다는 과학적 사회주의가 정밀하게 구현되지 못한 것 같다.    


특히 ‘경제를 자치체의 통제 아래 두겠다’는 목표를 위한 구체적인 전략이 부재하고 추상적인 선언에 그치는 애매모호한 논리들만이 나열돼 있어 더욱 혼란스럽다. 생태주의자들이 기존 제도권 정치에 편입되면 기득권의 노회한 술수에 동화되거나 농락당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코뮌주의자들이 시의회 등 지방선거 참여를 통해 그람시의 ‘진지전’ 같은 전술을 구사해야한다는 논거는 지극히 이중적이며, 그 진정성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아나키즘


아나키스트들이 조직구성, 다수결의 원칙 등에 고질적인 의구심을 품었던 것은 그것이 초래하는 소수자의 권리침해 등을 우려했기 때문인데 이를 몽상가들의 구태의연한 노파심으로 취급하면서, “소수자의 권리가 위축되는 일이 생기면 불가피한 경우 강제적으로 정정한다”는 해괴한 논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아나키즘이라는 거대한 스펙트럼 안에는 막스 슈티르너의 극단적 개인주의, 생활양식 아나키즘, 톨스토이의 기독교적 아나키즘, 크로포트킨의 아나르코 코뮤니즘을 비롯해 아나르코 페미니즘, 생태주의(에코 아나키즘), 생디칼리즘(조합주의) 등 무지 다양한 요소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상업적 이데올로기로 전락했다든지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에 불과하다는 등 단편적, 획일적으로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인지 당최 잘 모르겠다. 더욱이 개인과 공동체(집단) 관계를 이분법적 구도로 바라보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아 보인다. 마치 자유와 평등을 대립적 관계로만 보는 것처럼.


물론, 가끔은 아나키즘이 철학, 사상,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도 해본다. 여타 철학에 비해 때로는 감성적으로 다가오고 이론적으로 허술한 구석도 꽤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나키즘 내부에 자리 잡은 프티부르주아적 냄새, 자유로운 라이프 스타일, 호전적 테러리즘, 허무주의적 코드, 예술가적 직관성이 두드러지게 보일 때도 있다. 어쩌면, 머레이 북친이 내건 사회적 생태론, 코뮌주의는 그 허술함을 메우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 아니었을까? 어찌됐든 생태공동체, 자치, 개인과 공동체의 조화, 파괴적 자본주의를 막는 노력 등은 아나키즘이든 다른 이름을 내걸든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Posted by 아나키안

『지금, 여기의 아나키스트』, 김성국 외, 이학사, 2013.


고정된 틀이 없는 아나키즘, 그 정체는?


“사회주의 없는 자유는 특권이자 부정이며, 자유 없는 사회주의는 노예이자 야만이다.”라고 말한 바쿠닌의 극언이야말로 아나키즘의 지향점을 가장 명쾌하게 보여주는 명제라고 할 수 있다. 


형체 없는 바람이 그물에 걸리지 않듯 아나키즘(anarchism)도 실상은 고정된 틀이 없다. 교조주의적 사상은 반드시 현실의 그물에 걸리는 모순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자유’와 ‘평등’, ‘경쟁’과 ‘협동’의 두 축을 어떻게 조율하는가에 따라 사회(주의)적 아나키즘과 개인적 아나키즘으로 분류할 수 있다. 참고로 이데올로기 스펙트럼에서 사회적 아나키즘이 가장 왼쪽(급진)에 있다는 건 정치학적 상식. 일본식 번역으로 인해 무정부, 반국가론으로 오해받지만 사실은 권력·지배의 속성을 갖는 그 모든 것들을 거부하는 막가파(?) 사상이 아나키즘이다.

▲스스로 아나키스트라고 칭한 최초의 인물, 조제프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사진=위키피디아]


근대 아나키즘의 선구자라 평가받는 프루동이 “재산(소유)은 도적질이다(Property is Theft)”라고 말했듯이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과도한 편중과 축적을 비판하며 그 대안으로서 사회주의 요소를 지향한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다만 사회주의적 요소라는 것은 정부의 통제·관리에 의한 국가사회주의 형태보다는 스페인의 생산자 협동조합 ‘몬드라곤 공동체’처럼 주민이 직접참여·운영하는 풀뿌리 경제시스템, 자주적 협동조합 형태 등을 의미한다. 프루동과 더불어 아나키즘의 이론적 기반을 구축한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mutual aid)도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아나키즘은 프티 부르주아적 발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유물사관처럼 정제된 이론이나 고정된 틀이 없다는 것이 아나키즘의 장점이면서 단점이다. 과거 제1차 인터내셔널(국제노동자협회, 1864~1876)에서 마르크스와 바쿠닌이 대립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국가 및 계급 해체를 위한 중간단계인 국가사회주의(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이견 때문이다. 바쿠닌은 특정계급에 의한 독재, 중앙집권적 공산주의를 강력 반대했으며, 노동자뿐만 아니라 룸펜프롤레타리아 등의 非노동자, 아웃사이더도 혁명주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나키즘의 기본 상징색은 검정색(검은 깃발, black flag)이다. 이외의 대표적 상징물로 왼쪽부터 circle-A, 아나르코 생디칼리스트 깃발(Anarcho-syndicalist flag). circle-A는 “Anarchy is Order”(아나키는 질서다)라는 프루동의 슬로건에서 유래됐다. 특히 펑크락 등의 대중음악가들이 자유의 상징으로 자주 애용하기도 한다. 아나르코 생디칼리스트 깃발(Red-and-black flag)은 스페인내전(Spanish Civil War, 1936~1939)에서 처음 사용됐고, 파업, 사보타주(태업, sabotage), 급진적 조합주의를 상징하는 검은 고양이(black cat, wild cat, sabot-cat) 깃발도 종종 등장한다. 최근에는 “선장 없이도 항해할 수 있다” 또는 “민주적 의사결정을 통해 선장을 수시로 뽑는다” 등의 의미에서 해적깃발(Jolly Roger, Pirate flag)도 유럽의 시위 현장에서 자주 목격된다. 대체적으로 장난끼 넘치면서 자유로운 상징체계를 띠고 있다.

 

전체적으로 아나키즘은 경제적으론 평등성을 지향하지만, 정치적으론 자유(또는 자주)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무게 중심에 따라 사회적, 개인적 아나키즘 외에도  아나르코 생디칼리즘(anarcho-syndicalism: 아나키스트들의 노동자 조합 운동), 에코 아나키즘, 문화 아나키즘, 생활양식(lifestyle) 아나키즘, 아나르코 페미니즘, 심지어 톨스토이 사상에 기반한 기독교적 아나키즘 등 무지 많다. 대체로 혁신적인 의미의 단어에 아나키(anarchy)란 꼬리표만 붙이면 될 정도다. 거의 모든 진보적 개념과의 접붙이기를 통한, 잡종교배가 무궁무진한 슈퍼 유전자가 아나키즘이다. 긍정적으로 말하면 아나키즘이 그만큼 다양성이 존재하는, 폭이 넓은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때론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성격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아나키스트들을 소시민(프티 부르주아)적 낭만에 빠진 감성주의자, 공상주의자라고 비판한다.


대부분의 아나키스트들이 지향하는 이상사회는 소규모 자치공동체들의 수평적인 네트워크(자유연합체)인 것 같다. 박홍규 교수의 말처럼 ‘자유’, ‘자치’, ‘자연’이라는 3대 요소가 그 핵심이다. 자치라는 말 속에는 현재의 지방자치나 지방분권이라는 의미보다는 직접민주정치·직접행동 개념이 농후하다. 지금의 지방자치 역시 대의제의 축소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중우(衆愚)가 아닌 중우(衆優)정치


이 책에서 어리석은 민중이라는 의미의 중우(衆愚)에서 직업정치인보다 더 현명한 다수 시민들의 중우(衆優)정치로의 전환을 제시하며, 대의제는 민주주의가 결코 아니라고 주장하는 강동권(한국아나키즘학회장)의 <아나키스트 정치구상>편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인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이른바 ‘아나키스트 정치’를 위한 3단계 로드맵 구상은 대단히 혁명적인 상상력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 기반을 인터넷 정보기술에 두고 있는데, 우리가 사용하는 IT기술이 그가 생각하는 것처럼 무제한 자유롭고 평등한 지는 따져볼 일일 것 같다. 


한편, 아나키즘은 서구사상일까? 이덕일(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우당 이회영, 단재 신채호 등 일제 식민시대에 아나키즘으로 전향한 민족지도자들의 사례를 들며, 사대부 계급의 우월성을 인정치 않고 평등성을 강조한 양명학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고, 특히 동양의 개혁가들이 공통적으로 주창했던 ‘대동사회’와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에 기반한 사회는 일맥상통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아나키즘이 서양에서 만들어진 사상이 아니라 동양 고대사회에서 여러 지식인이 이상으로 삼았던 사회사상이 시공을 초월해 서양에서 이론화되면서 아나키즘이란 용어로 정리됐을 뿐이라고 단언한다. 

▲님 웨일즈가 쓴 <아리랑>의 주인공이며 사회주의 혁명가, 독립투사, 아나키스트였던 김산(金山, 본명: 장지락). 일제 식민시대 상당수 지식인들과 독립운동가들은 아나키즘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했다.[사진=위키피디아]


이외에도 권위에 대한 저항, 생태주의적 세계관, 무집착의 논리 등으로 불교와 아나키즘 간에도 공통점이 많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개인적으론 지배층의 통치 헤게모니 역할을 맡았던 유교 이념 중 하나인 양명학이나 노장사상, 불교보다는 허례허식과 계급, 사욕(재산축적)을 타파하고 겸애를 주장한 묵자 사상이야말로 아나키즘에 한층 더 가까워 보인다. 묵가는 공자사상에 반발해 하층민을 주체로 하는 정의론와 행복론을 설파했기 때문이다. 19세기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에 기반한 제국주의적 사상 조류에서 식민지 지식인들에게 새로운 희망은 적자생존이 아닌 상호부조라는 원리에 의해 인류가 진보(진화)한다는 아나키즘이었고, 본능적으로도 끌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리얼리스트가 되자, 하지만 불가능을 꿈꾸자!  


이문창(자유공동체운동자연합 준비위원장)은 남북통일을 민족의 의미보다는 “민중 삶의 자유를 탈환하는 과정 그 자체일 뿐”이라고 말한다. 즉 민중 스스로 삶의 자유를 쟁취하는 과정으로서의 자유공동체 운동과 통일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 자유공동체 통일은 정치지도자들에 의한, 위로부터가 아닌 ‘아래부터 위로, 주변에서 중앙으로’의 통일전략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한 자유공동체·자유연합에 중추적 매개자로서 세계 170여개국에 산재한 700여만의 해외동포들과 국내 다문화구성원의 역할을 강조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이러한 자유공동체 운동을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전체에 확장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이창언(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교수)은 “아나키즘 차원의 민주성은 관리가 아닌 자율적 참여와 소통을 지향하며 소수성의 보장을 중시한다”며, “지속가능성 목표를 달성키 위해 전략적 계획, 시민사회의 이니셔티브, 국가정책의 변화, 국제협력을 위한 공동행동을 시도한다”고 설명한다. 김성균(성결대 지역사회과학부 겸임교수)은 그동안 한국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공동체 운동의 성향이 다분히 아나키즘적 요소를 갖고 있다고 분석한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주관리에 큰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사회의 공동체 문화 운동의 새로운 비전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1871년 파리 시민과 노동자들의 봉기에 의해서 수립된 혁명적 자치정부, 파리코뮌은 그동안 수많은 혁명가들에게 반면교사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비록 국가권력에 의해 잔인하게 짓밟혔지만 국가 없는 공동체의 가능성을 제시한 역사적 모범사례이기도 하다. [사진설명=1871년 3월 파리 코뮌 참여자들이 쳐놓은 바리케이드, 출처: 위키피디아]


또, 윤용택(제주대 철학과 교수)은 지역공동체와 생태계를 살리는 ‘지역통화’의 역할을, 정중규(대구대 한국재활정보연구소 부소장)는 장애인 복지의 패러다임을 바꾼 독립생활운동과 아나키즘으로의 확대 당위성을, 이소영(고려대 연구교수)은 전반적인 삶의 양식을 변화시켜 그 삶을 통해 아이들을 키워가는 에코토피아 실천사례들을 제시한다. 임해수(한국염소협회장)는 정부주도의 협동조합보다는 농협을 해체하고 농민조합원을 해방시켜 자유, 자주, 자치적 농민연합공동체 협동조합의 탄생과 아나키즘적 협동조합공동체 운동방향을 제안한다. 김민정(환경사회학회 총무이사)은 낭만적이거나 유토피아적 방식만으로는 원하는 대안사회를 실현할 수 없다며, 오히려 “중앙 집중적인 민중권력”이라는 이색적인 제안을 시도한다.

 

전가의 보도처럼, 사상계의 흔한 논리적 사고법이 돼버린 헤겔식 변증법을 차용한다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지양한 변증법적 결과가 혹시 아나키즘이 아닐까? 사회구성체 논쟁에 따른, 민족 또는 계급에 의존하는 NL-PD의 고정된 패러다임은 교조주의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변화하는 시대에 역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거대담론뿐만 아니라 미시적인 생활문화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 것이 아나키즘은 아닐까? 진정한 예술가는 필연적으로 자유로운 사상을 소유하고 속박을 거부하는 아나키스트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은 이데올로기, 이념의 경계를 넘어서는 아나키즘의 무한 확장 가능성을 상징한다. 감성과 낭만이 죽어버린 현실에서 오히려 불가능을 꿈꾸는 아나키스트의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지금, 여기의 아나키스트 - 10점
김성국 외 지음/이학사
※아나키즘 관련 서적

※관련 포스팅:

2005/12/09 - [My Text/Book] - 반역아 미하일 바쿠닌/ E.H.카

2005/11/30 - [My Text/Book] - 크로포트킨, 만물은 서로 돕는다

Posted by 아나키안


Die Welle (The Wave, 2008, 독일)

감독 : Dennis Gansel



강의하고 싶은 ‘아나키즘’이 아닌 본의 아니게 ‘독재정치’에 대한 특강을 진행해야 하는 라이너 벵어(Rainer Wenger, 배역 Jürgen Vogel) 교사. 그만큼이나 학생들 역시 그다지 의욕이 없다. 라이너는 좀 더 재미있는 수업을 하고자, 학생들이 독재정치를 체득할 수 있는 위험한 실험들을 시작하지만 거침없이 밀려오는 물결(wave)처럼 휘몰아치는 전체주의 망령은 멈출 수 없고 결국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마치 히틀러가 권총으로 자살한 것마냥... 


히틀러, 무솔리니와 같은 독재자와 독재정치는 다시는 도래하지 않을 것이라는 학생들의 장담과는 달리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 채 전체주의의 망령에 영혼을 맡기게 되는 이른바 ‘전체주의화’ 과정은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때때로 이슈로 떠오르는 군부독재에 대한 향수, 새마을 운동 재평가, 군사정권과 민주화에 대한 왜곡, 교과서 검정문제 등을 다시 한번 심각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먹고 살기 힘든 판국에 그런 것은 별로 중요치 않은 시답잖은 문제이며, 사람들이 예전처럼 멍청하진 않을 거라고 모두들 장담하지만 전체주의, 독재의 물결에 조금씩 침식되어 가다 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파국이 올 지도 모른다. 역사는 반복될 수 있다. 그 악순환의 역사는 결국 우리 스스로 만들기에 무책임한 ‘관망’은 ‘동조’와 다름 없을 것이다.


2008/07/20 - [My text/Cine] - 브이 포 벤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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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 (아나키즘의 토대를 마련한 고전!), 그린비, 2006.


아나키즘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한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을 통해 정치사상으로서의 아나키즘을 분석하고, 현대적 시각에서 아나키즘을 재조명하는 것과 함께 현실에서 접목할 수 있는 대안들을 제시했다.


▲인상깊은 구절


"사람들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모두를 반대하며 새로운 대안을 꿈꾸었던 해인 1968년에도 '상호부조론'은 어김없이 다시 등장했고, 미국과 다국적기업들의 칼날이 전세계를 난도질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도 '상호부조론'은 이상으로서가 아니라 현실로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처음 출판됐을 때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한 인간이자 생명체로서 당신은 어떤 사회에 살고자 하는가?'라는 물을 던지면서 말이다" (P.10)


"당신은 지금의 현실에서 행복을 느끼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변화를 위해 어떤 직접행동을 할 것인가? 이런 물음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크로포트킨의 아나키즘은 가지 않은 또 다른 길로서 우리를 계속 유혹할 것이다. 서로 돕고 보살피는 공동체는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 무한경쟁에 길들여진 우리의 몸과 마음이 계속 망설이고 있을 뿐이다." (P.216)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 - 10점
하승우 지음/그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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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고드윈(William Godwin·1756∼1837·英)


영국의 비국교도(非國敎徒)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고드윈은 유럽에서 아나키즘을 최초로 이론화(理論化)한 사상가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시골학교 여러곳을 다니다가 11세때 독립 교회파 목사인 사무엘 뉴튼의 제자가 되면서 기독교 산데만 파(派)와 접하게 된다. 로버트 산데만(Robert Sandeman·1718∼1771)장로가 지도자였던 이 교파는 초대교회의 복귀와 공동생활을 주장하며 스코틀란드에서 창설되었다.


산데만 파 사람들은 교회에 의한 지배의 정당성을 부정했다. 그들은 신앙에 따르는 인간은 국가와 아무런 관계도 안가진다고 주장하였으며, 임명된 목사가 한사람도 없는 독립적인 집회조직을 가지고 있었다. 또 재산 공유(共有)를 바람직한 이상으로 믿고 남는 것은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분배해야 하며, 화폐를 저축하는 일은 죄악이라고 가르쳤다. 고드윈은 10대초부터 20대에 이르기까지 이 교의(敎義)에 충실했다. 23세때 혹스턴 신학교를 졸업하면서 그는 산데만 파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그러나 이때의 경험이 고드윈에겐 두고두고 그의 사상적 바탕이 되었으며, 37세때인 1793년에 내놓은 대표적 저서 『정치적 정의(正義)』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윌리엄 고드윈은 "정치의 악폐는 아마도 끝나지 않겠지만, 범죄의 역사를 참된 자유와 평등의 사회로 바꿔놓을 가망은 희미하나마 한번 추구함직한 가치는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그의 신념을 이론적으로 펴낸 저서가 바로 『정치적 정의』이다. 이 책에서 그는 4가지 기본적인 명제(命題)를 밝히고 있다. 이것은 고드윈의 사상을 압축한 것이라고 할수 있다.


여기서 고드윈이 밝힌 명제는 첫째 인간의 도덕적 성격은 지각작용의 산물이며, 인간이 태어날 때는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는 인간의 정신에 작용하는 모든 수단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정부(권력)인데, 인간 정신은 간섭하지 않으면 저절로 잘못을 알아내고 진리에 접근한다는 주장이다. 셋째, 정부(政府)는 원리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실천에 있어서도 악(惡)이라는 것이다. 


그는 입법도, 법의 운용도 부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실제로 특정개인에게 권력을 부여함으로써 부(富)는 탁월한 것이라는 환상을 강화하는 것이 정치제도의 본성이라고 주장했다. 고드윈은 재산과 권력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 최초의 한 사람으로써, 이러한 지적 때문에 아나키스트들은 국가의 적(敵)이 되었으며, 또한 자본주의의 적이 되었다. 넷째의 명제는 인간의 완전가능성에 대한 언명이다. 완전가능성은 인류가 가진 가장 명백한 특성의 하나이며, 따라서 인간의 지적(知的)상태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상태도 또한 전진적인 개선의 과정에 있다고 그는 말했다.


고드윈은 그후 프루동이나 바쿠닌등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으나 러시아의 저명한 아나키스트인 크로포트킨에게는 상당한 감명을 주었으며, 후대의 많은 아나키스트들에 의하여 자신들의 선구자중 한사람으로 평가되었다. 고드윈은 『정치적 정의』이외에 『세미나리 설명서』(1783), 『연구자』(1797), 『영국공화제사』(1824), 『인간고』)(1831)등 여러 저서를 남겼다.


출처 : 인터넷 대학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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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동 Proudhon, Pierre-Joseph 1809~1865


프랑스의 가난한 선술집 주인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목동으로 보냈다. 그에게 이상사회란 자기 아버지와 같은 수공업자나 농민들이 자유롭고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뜻한다. 총명했던 그는 브장송에 있는 대학에 장학생으로 진학해 부유한 상인 아이들로부터 가난뱅이라는 손가락질을 당했다. 집안의 경제적 파탄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인쇄 견습공이 되었지만 향학열을 식지 않았다. 그는 인쇄소에서 기술을 배우면서 라틴어, 그리스어, 헤브라이어를 독학하는 한편 여러 지역의 자유주의자나 사회주의자들과 사상의 토대를 쌓았다.


그는 1838년 브장송 아카데미로부터 장학금을 받아 파리로 유학할 수 있었다. 이 때 그는 자신의 사상을 정리한 최초의 저서 '재산이란 무엇인가? (1840)를 발표해 놀라운 반응을 얻었다. 여기서 프루동은 '나는 아나키스트'라고 선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재산은 도둑질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가 공격 대상으로 삼은 재산은 일반적인 의미의 재산이 아니라 타인의 노동을 착취해 취득한 재산이었다. 반면에 다른 의미의 재산, 즉 농부가 자기가 일할 토지를 소유할 권리나 장인이 도구나 작업장을 소유할 권리는 자유라고 생각했다. 프루동이 공산주의를 비판한 이유는 공산주의가 개인으로부터 생산수단에 대한 통제권을 빼앗아 버림으로써 자유를 파괴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1842년 '재산이란 무엇인가?'의 후속편인 '소유자에 대한 경고'를 출간해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판사가 그의 주장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죄를 물을 수 없다고 판결함으로써 유죄를 모면했다. 1843년 프루동은 리옹과 파리를 방문해, 카를 마르크스와 미하일 바쿠닌 같은 인물들과 친교를 맺었다. 그러나 프루동은 곧 마르크스와 대립하게 되었다. 프루동이 '경제적 모순 또는 빈곤의 철학'(1846) 를 발표하자 마르크스는 '철학의 빈곤'(1847)으로 프루동의 견해를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는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아나키스트와 마르크스 간의 역사적 대립의 시작이었다.


1848년 초, 파리로 가서 '인민의 대표자'를 비롯해 모두 네 종류의 신문을 편집했는데, 네 신문 모두 정부의 검열에 의해 차례로 폐간되었다. 프루동은 1848년 혁명기에 정치투쟁에 나섰다가 제2공화정의 대통령인 루이 나폴레옹을 비판한 죄로 1852년까지 투옥되었다. 그러나 그는 옥중에서도 신문을 편집했고, '혁명가의 고백'(1849), '19세기의 혁명관'(1851) 등의 주요 저서를 집필했다.


1852년에 석방된 프루동은 경찰의 항상적인 감시 때문에 활동하기가 어려웠으나 1858년에 '혁명과 교회에서의 정의를 위하여'(3권)를 출간했다. 이 책은 출간 즉시 모두 몰수되었고, 재판을 받게 되었다. 벨기에로 망명한 후 열린 궐석재판에서 그는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는 1862년에 파리로 돌아온 뒤 노동자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의 상호부조주의 사상을 받아들인 파리의 수공업자들은 1865년 그가 죽기 직전에 창립된 제1인터내셔널의 주된 세력이 되었다. 프루동의 마지막 저서 '노동계급의 정치적 능력에 대하여'(1865)는 그의 임종 직전에 완성되었다. 그는 이책에서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 스스로의 과업이라고 주장했다.


프루동 이전에 영국의 철학자 윌리엄 고드윈 등이 아나키즘 사상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 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그의 독특한 아나키즘(정부 없는 사회), 상호부조주의(신용은행 설립을 위한 노동자들의 조직), 연방주의(중앙집중주의적 정치 조직의 부정) 같은 사상은 프랑스 혁명사상을 개인적 경험으로 재해석한 결과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프루동은 자기가 하나의 사상체계를 정립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당을 건설하려는 사상을 혐오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제1인터내셔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으며, 후에 그를 '우리 모두의 스승'이라고 언급한 바 있는 바쿠닌과 러시아의 작가 페테르 크로포트킨이 발전시킨 아나키즘 이론의 기초가 되었다. 그의 사상은 러시아의 인민주의, 1860년대 이탈리아의 급진 민족주의, 1870년대 스페인의 연방주의, 프랑스에서 발전하여 나중에 이탈리아와 스페인에 큰 세력을 형성한 생디칼리슴 등의 다양한 사상적 조류에 영향을 미쳤다. 1920년대 초까지 프루동은 프랑스 노동계급의 급진주의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인용: 이덕일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 웅진닷컴, 2001, pp11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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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슈티르너(Max Stirner 1806 ∼1856)

 

"국가(國家)는 누구든지 자기의지(自己意志)를 가지지 말 것을 요구한다. 만약 한 인간이 그것을 가졌다면 국가는 그를 배제하고 폐쇄하고 추방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만일 모든 인간이 그것을 가진다면 그때는 그들이 국가를 배제할 것이다. 자기의지와 국가는 먹느냐 먹히느냐 하는 적대관계에 있는 힘이다. 양자간에 영원한 평화는 있을 수 없다."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로 알려진 독일의 철학자 막스 슈티르너는 자신의 저서 『유일자(唯一者)와 그의 소유』를 통해 개인의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에 의하면 국가를 독재적이건 민주적이건 개인의지의 부정(否定)이다. 그것은 집단적 인간을 숭배하는 데다 기초를 두고 있으며, 국가의 입법제도 및 법에 의한 강제야말로 행동의 의경의 고정·동결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는 유일자(ego)로서의 자기를 소유하기를 원하는 인간에게는 용서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에고이스트와 국가간의 투쟁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슈티르너는 본명이 요한 카스파 슈미트(Johnann Kaspar Schmidt)이다. 저서『유일자와 그의 소유』를 내놓으면서 필명을 막스 슈티르너로 한 것이 그의 이름이 돼버렸다. 독일 한 빈곤한 악기장(樂器匠)의 집안에서 태어난 슈티르너는 1826년에 베를린 대학에서 철학을 배우면 거기서 헤겔의 강의를 듣게된다. 정신질환을 앓았던 모친을 돌보기 위해 학업을 중단했다가 1832년 베를린대학으로 돌아왔다. 몇해동안 고등학교 무급교사를 지내다가 1839년에 대학교 정식교사직을 얻게되면서 그의 생활은 비로소 안정을 찾게된다.


평소 가까이 사귀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슈티르너는 5년 남짓 교사생황을 하는 동안 베를린의 청년 헤겔파(派) 와 어울리며 교우관계를 갖는다. 이 그룹은 프리드리히가(街)의 술집 힙펜에서 모임을 가졌다. 당시 신학자 브루너 바우어가 이 그룹을 지도했는데, 여기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혁명시인 헤르베흐등 많은 지식층이 참여했다.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슈터르너가 쓴 것이 『유일자와 그의 소유』 (Der Einzige und sein Eigentun) 이다. 이 책은 1845년에 출간됐다.


이 저서에서 슈티르너는 개인과 국가의 대립관계 뿐만 아니라 19세기의 정신과 모순되는 비도덕을 옹호했으며, 헤겔을 비롯한 그 시대의 사상 전 영역을 공격했다. 또한, 모든 종교적 신앙의 파괴를 역설하고 , 절대적 원리와 당(黨)같은 개인위에 군림하는 것에 반대했다.


이 책은 출판당시 많은 비난을 받고 한때 잊혀졌으나 그가 죽은후 40여년이 지난 1890년대에 들어 아나키스트 집단을 통해 널리 읽혀지면서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사상은 니체의 『초인(超人)』, 칼라일의 『영웅(英雄)』, 에머슨의 『현자(賢者)』등 저서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슈티르너의 말년은 매우 불운했다. 부인과 헤어진 이후 한때 빈민굴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빚 때문에 감옥에 가기도 했다. 그의 또 다른 저서로는 『반동(反動)의 역사』가 있다.


출처: http://news.kyunghee.ac.kr/fs/content.asp?number=2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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