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레스티지(The Prestige, 2006)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마술과 연극의 기묘한 공통점


마술의 최고 단계를 뜻하는 ‘프레스티지’를 구현하면 말 그대로 명성(prestige)을 얻는다. 그 명성은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감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마술은 연극과 매우 흡사하다. 

굳이 연극의 3대 요소를 강조하지 않더라도, 결국 무대예술은 관객의 평가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점에서 언제나 상대성을 띠고 있는 듯하다. 영화 《프레스티지》는 그 상대성을 초월하고자 하는 두 마술가들이 벌이는 치열한 대결을 그리고 있다.

《프레스티지》의 주인공이자 마술가로서 라이벌, 로버트 앤지어(휴 잭맨)와 알프레드 보든(크리스찬 베일)이 ‘집착’의 극한까지 치닫게 되는 이유도 본질적으로는 관객에게 놀라움과 즐거움, 즉 감동을 주기 위함이다. 


부조리의 마술… ‘시지포스’의 고단함


두 캐릭터의 극한대립은 공간이동 마술에서 절정에 이른다. 로버트와 알프레드가 고유의 자기존재성을 내던지면서까지 얻고자 했던 공간이동술은 마술의 최고단계인 ‘프레스티지’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험난하고 부조리한 여정은 마치 세포가 자기분열과 증식을 반복하듯 끊임없이 떨어지는 바위를 계속 밀어올려야 하는 시지포스(Sisyphus)의 고단함처럼 비친다. 

특히, 로버트의 공간이동은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그야말로 예술가의 집요한 집착, 또는 작품에 만족하지 못해 망치로 도자기를 산산이 깨부수는 도예가의 고독한 숙명처럼 보인다. 하지만 《프레스티지》에서 그 숙명이 그다지 숭고하게 보이지 않는 건 무한, 절대에 대한 예술가의 동경이 아닌 치졸한 복수심과 졸렬한 경쟁심리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마술과 과학의 중첩, 빅토리아 시대


《프레스티지》의 독특함은 관객의 상상력과 추리력을 돋우기 위해 스토리 전개의 질서정연한 배열이 아닌 과거와 현재를 복합적으로 구성했다는 점, 실존인물이자 미스터리 과학자로서 토마스 에디슨의 라이벌이었던 ‘니콜라 테슬라’를 이야기 구성의 중심인물로 등장시켰다는 점, 빅토리아 시대의 미장센을 은유적으로 구현하고자 했다는 점 등이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하고 있던 1837년부터 1901년까지의 기간을 의미하는 빅토리아 시대는 영국이 산업화, 근대화로 전진하는 과도기다. 요컨대, 마술의 시대에서 과학의 시대로 넘어가는 중첩된 시대를 《프레스티지》는 그려내고자 한 것 같다. 


예술이 주는 감동의 본질은…


자기와 빼닮은 쌍둥이 형제가 있다는 점을 이용해 손가락까지 똑같이 잘라내며 공간이동 마술을 시현한 알프레드는 전근대성을 상징한다. 반면에 과학자 테슬라의 도움을 받아 마술과 과학을 접목시킨 로버트에게는 ‘무한복제의 근대성’을 부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두 캐릭터 모두가 선보인 공간이동은 본질적으로 자기희생에 토대를 두고 있지만 관객들은 한층 진보된 로버트의 마술에 열광한다. 

한편으론 《프레스티지》는 발터 벤야민이 언급했던 ‘아우라’를 생각하게 한다. 예술작품의 원본이 지니는 시간과 공간에서의 유일한 현존성, 바로 ‘지금’, ‘여기’에서 도출되는 오직 단 하나의 그것! 무한복제를 반복하는 로버트의 공간이동 마술은 파격적이고 과학적이지만 알프레드의 그것보다 감동적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프레스티지 예고편]


프레스티지 (2006)

The Prestige 
8.1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휴 잭맨, 크리스찬 베일, 마이클 케인, 파이퍼 페라보, 레베카 홀
정보
스릴러, 판타지 | 영국, 미국 | 130 분 | 2006-11-02
글쓴이 평점  

Posted by 아나키안

○ 영화: 아메리칸 허슬(American Hustle, 2013)
○ 감독: 데이비드 O. 러셀(David O. Russell)

‘크리스찬 베일’에게서 왠지 ‘최민식’의 향기가…

어두컴컴한 그늘에 숨어있는 미지근한 진실보다 양지바른 곳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달콤한 거짓이 더 흥분되고 심장박동수를 빠르게 한다. 사기꾼 크리스찬 베일(Christian Bale)이 볼품없는 자세로 수시로 심장약을 삼키는 모습은 거짓이라는 폭풍이 요동치는 한가운데에서 생존하기 위한 그만의 응급처치처럼 보인다.


 

70년대 실제 일어난 스캔들(Abscam Scandal)을 모티브로 만들었다는 데이빗 O. 러셀 감독의 <아메리칸 허슬>에는 어딘가 모르게 최민식 주연의 <범죄와의 전쟁>(윤종빈 감독)과 엇비슷한 실루엣이 보인다. 통통한 상체를 리듬감 있게 움직이며 썩 아름답지 않은 단발머리 스타일을 요리조리 만지작거리는 최민식과 스프레이로 고정한 가짜 머리칼을 조심스레 쓰다듬는 크리스찬 베일의 모습은 묘하게 겹친다.

<범죄와의 전쟁>이 호황기였던 80년대 대한민국, <아메리칸 허슬>은 경제 쇠퇴기를 맞이하고 있던 70년대 미국이 배경이라는 점에서 두 작품의 시대 상황이나 스토리는 다소 다르다. 하지만 편법이 상식으로 통용되는 혼돈의 시대였다는 점에서는 유사한 점도 많다. 특히, 진실과 거짓, 우정(또는 사랑)과 배신, 선과 악… 양날의 경계에서 작두를 타는 딱한 존재들의 죽살이를 흥미롭게 엿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두 작품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낯설지 않았다.

그들만의 감수성에서 보편성을 찾기는…

70년대 뉴욕 풍경에 흠뻑 빠질 수 있도록 다양한 미장센(인테리어, 패션, 소품, OST 등)이 곳곳에 배열돼 있다. 하지만, 톰 존슨의 ‘Deliah’, 스틸리 댄의 ‘Dirty Work’ 등 귀에 익은 몇몇 팝송을 제외하곤 이러한 섬세한 배려에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관객은 아메리칸 외에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다. 장년층 이상의 아메리칸에겐 아늑한 향수를 자극하겠지만 비영미권 관객들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지는 조금 의심스럽다. 미국 사람이 부산 사투리와 온갖 속어가 넘실거리는 <범죄와의 전쟁>을 보고 얼마나 큰 감흥을 느낄 수 있을까…

 

 

에이미 아담스의 영어 발음이 영국식이든 미국식이든, 설령 그것이 그녀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치명적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체감할 수 없는 관객에겐 큰 의미가 없다. 배우들이 직접 제안하기도 했던 패션이나 인테리어도 마찬가지다. 명품 배우들이 시종일관 치고받는 독특한 대화법도 번역한 자막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 같다. <아메리칸 허슬>이 골든글로브(Golden Globe) 어워드를 싹쓸이할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고 해서 영미권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도 높이 평가받아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런 점에서 <아메리칸 허슬>을 보고 지나치게 열광하는 한국 관객들의 모습은 조금 의아하다. 70년대 아메리칸 코드의 특수성, 즉 그들만의 감수성에서 보편적 코드를 찾는 이중작업이 최소한 나에게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훌륭한 연기에 비해 호소력 있는 대사가 의외로 미흡했다는 것은 다른 각도에서 봤을 때 각본의 한계는 아니었을까.


 

물론, <아메리카 허슬>은 평범한 스토리를 연출력과 연기력으로 커버한 모범 사례다. 사실,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가 아닌 소프트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이러한 범죄물은 자칫하면 재미없는 로맨스로 빠지거나, 고리타분한 권선징악으로 흘러버릴 소지도 있어 남다른 연출력이 필요하다. 재치 넘치는 연출력과 배우들의 달콤 쌉싸름한 명연기가 아니었다면 <아메리칸 허슬>은 굳이 돈 주고 보기에는 매우 애매한 ‘계륵’ 같은 작품이 돼버렸을 것이다.

솔직히 고무장갑 낀 제니퍼 로렌스만 보였다.

영화에서 몸무게를 대폭 늘리고 머리에 가발을 씌우거나 뽀글이 파마를 감행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 크리스찬 베일, 브래들리 쿠퍼(Bradley Cooper), 제레미 레너(Jeremy Renner) 등의 아우라는 여러 작품들을 통해 익히 보아온 터라 유별나게 감동할 것까지야 없었다. 하지만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에이미 아담스(Amy Adams)의 팜므파탈 컨셉에 비해 제니퍼 로렌스(Jennifer Lawrence)의 색다른 모습은 시종일관 이목을 끌었다.

 

 

<아메리칸 허슬>에서 맡은 소소한 역할과 작은 비중에 비해 의외로 강한 인상을 받았다. <윈터스 본>(2010)에서 극찬을 받은 그녀의 연기력과 천부적 감각이 결코 과대평가가 아니었음을 재확인했다. 샛노란 고무장갑을 낀 채 폴 매카트니의 ‘Live and Let Die’를 따라 부르는 것도 모자라 헤드뱅잉을 격하게 시현하며 걸레로 탁자를 빡빡 닦는 장면은 그야말로 <아메리칸 허슬> 최고의 압권이었다. 제니퍼 로렌스가 영화 <아메리칸 허슬>을 더욱 빛나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점에서, 작품에서의 배역은 트러블 메이커였는지는 모르나 실제 효과는 단연코 히트 메이커였다.


※인상 깊은 대사


"사람들은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언제나 서로 속고 속인다. 

심지어는 자기 자신도 속이는 법이다. 

모두 가면을 쓴 채로 서로 자기 자신에 대해 얘기하고, 

심지어 우리가 필요하거나 원하지도 않는 걸 위해 우리 자신을 내다 팔고있다. 

위험에서 도망치고 추한 진실에서 도망친다..."

: 크리스찬 베일(어빙 로젠필드)

 

[예고편]

Posted by 아나키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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